9월1일부터 9월11일까지 타이베이에서 지냈다.
대만엔 작년에 처음 갔고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다.
난 아무래도 여행은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은데, 대만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 하게 된다.
더운 나라를 좋아한다.
타이베이의 9월은 서울의 가장 더운 여름보다 훨씬 덥고 습하다. 키 큰 야자수들 보면서 생각한다. 그래 나무들이 저렇게 잘 자랄 수 있는, 1년 내내 따뜻한 곳이 사람에게도 살기 좋은 곳 아닐까? 막 사계절 뚜렷하고 그러면 나무도 별로 못 크고 사람도 사계절처럼 뚜렷하게 난폭해지고..
습도가 무지 높아서 빨래가 잘 안 말랐다. 아마 이번 대만 방문에서 유일하게 스트레스 받은 일이 있다면 빨래 덜 마른 냄새일 것이다. 어디서든 그 냄새가 조금씩 났다. 맑은 날 하루종일 바깥에 널어 놓아도 잘 안 마르길래 결국 코인런드리의 건조기를 이용했다. (400원/6분 x 3)
그래도 뭐 이렇게 높고 맑은 하늘과 큰 나무 실컷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너무 더워서 한국에서는 잘 입지 않던 반바지만 입고 다닌 것도 좋았다. 사실 예보상으로는 거의 매일 흐린 날씨였는데 다행히 그 예보가 틀린 것도 좋았고.
Airbnb를 처음 이용해봤다.
세 곳에서 4박, 3박, 3박씩. 혼자 오랫동안 외국에 있는게 심심할까봐 그랬나. 아무튼 대만에 사는 사람이랑 같은 집에서 지내면서 대화도 좀 해보고 싶었다. 첫번째 집이 너무 아늑하고 좋았는데 알고 보니 호스트가 인테리어 디자이너라고 했다. 세 집 중에 가장 편안하고 쾌적하게 지냈다. 타이베이에 또 간다면 다시 방문할 수 있을 정도. 세번째 집은 도미토리라서 첫날부터 약간 후회했는데, 운이 좋았는지 하루 빼고 나 혼자 잘 수 있었다.
서울의 원룸에서 지내다가 거실이 있는 큰 집에 가니까 숨통이 트이고 좋았다. 역시 사람이 살(living) 만 하려면 무엇보다 거실living room이 있어야 해.
대만의 간편식을 좋아한다.
밀크티와 과바오, 그리고 편의점에 있는 그 수많은 음료수들. 아침식사만 파는 식당도 너무 좋다. 한국에도 좀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월세의 압박을 견딜 수 없겠지. 한 끼를 간단하고 저렴하고 맛있게 챙기기에 한국보다 좋다. 그리고 난 또 옷에 냄새 배는 거 싫어하기 때문에 야외 테이블을 쓰는 식당 많은 것도 좋고..
그치만 좀 더 든든한 식사 쪽으로 가자면, 나에겐 아직 한식이 더 맛있게, 저렴하게 느껴진다. 이건 약간 한국이 식문화에 노동력을 많이 쓰는 경향과도 닿아있는 걸까. 대만에선 음식을 파는 쪽과 사는 쪽 모두 간편함을 지향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대만은 personal zone(개인이 온전히 누리는 영역?)이 한국에서보다 더 넓게 적용된다는 느낌을 항상 받는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이만큼은 떨어져 있어야 해”
“인간이 낼 수 있는 소리의 크기는 이만큼을 넘으면 안 돼”
“인간에게는 이 정도의 나무와 공원이 필요해”
이건 인구밀도의 문제일까? 대만 땅이 그렇게 넓지는 않던데..
무엇보다 남자들의 공중도덕이 한국과 많이 다르다. 남자들이 거리에서 큰 소리로 웃고 떠들지 않는다 한국이랑 다르게.. 그리고 이성애 유자녀 가족 단위의 경우, 아이를 업고 안고 놀아주는 건 99퍼센트의 확률로 남편이었다 한국이랑 다르게.. 이건 그냥 중화권 문화의 특징일까? 한국남자 도대체 뭐가 문제야?
아무튼 그래서 나는 대만에 있을 때 한국에서보다 안락하게 지낼 수 있는데, 내가 중국어를 못 알아듣기 때문도 있겠지..
그리고 어딜 가든 노인과 장애인이 많이 보인다는 것도 한국과 다른 점이다. '많이'라는 말이 애매하지만 어쨌든 한국보다 자주, 다양한 곳에서 마주하게 된다. 일단 버스나 지하철에서 지정한 교통약자석의 분포부터도 한국보다 두배 이상 많았던 것 같다. 자전거 도로, 경사로가 잘 돼있으니 당연히 휠체어도 다니기 편하고.
나 같은 외지인이 열흘 가량 돌아다녀봤자 얼마나 구석구석 갔을까. 대체로 유명하거나 큰 길가 위주로 다녔을텐데 곳곳에서 노인과 장애인을 서울에서보다 자주 마주쳤다면 이건 꽤 큰 차이가 아닐까. 힙하고 깨끗한 공간 물론 서울에 더 많겠지만, 모두에게 편안하게 열려있는 공간은 대만에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이 추워지면 또 대만에 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