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래로 갈 수 없다면

친구가 김초엽의 소설을 추천해서 읽었는데 너무 재밌었다. 그의 SF 단편집우리가 빛의 속도로 없다면 읽은 다음날 서울와우북 페스티벌의 대담 프로그램에 그 분이 참여한다는 소식을 듣고 냉큼 예약해서 다녀왔다. 대담의 키워드는 '정상성'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정상'으로 규정하며 기준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이야기 나누었다. 

SF 작가 분이 모인 자리인 만큼 과학 분야의 사례 많이 들을 있었다. 남성중심의 과학분야가 어떻게 여성 과학자를 배제하고 있는지, 과학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은 어떤 어려움을 여전히 겪고 있는지, 그리고 이런 '비정상적인 정상성' 대하는 SF 태도는 무엇인지.

 

정보라 작가를 올 여름 서울에서 열렸던 국제도서전 대담에서 처음 봤다. 날의 대담 주제는 '페미니즘과 SF'였 역시 이번처럼 사회를 보셨었다. 패널 어떤 SF작가가 말했다. SF 아무래도 세계관을 새로 쓰는게 자연스러운 장르이기 때문에 페미니즘과 어울릴 있다고. 많이 동의했던 같다. 내가 제일 재밌게 읽은 해외 SF 팁트리였고. (국내는 김초엽!)

 

백인-이성애자-남성 서사를 (완전히는 아니지만) 피하다보니 언젠가부터 영화는 안보게 되었다. 흔히 픽션의 비밀(!) 중 하나로 '결핍이 있는 인물을 다룬다'를 꼽는, 지구상에서 가장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백인-이성애자-남성 서사가 아직도 이렇게 넘쳐나는 보면 정말 웃기고 우습다. 

 

소설은 돈이 안돼서 그런가, 영화보다는 다양하고 섬세한 이야기가 아직 많다고 느낀다. 특히 SF 작가들의 고민은 깊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SF 읽는 이유 하나는 인간을 .. 엄청 많이 멀리서 바라봄으로써 생기는 현기증(?) 때문이다. 인간, 인생, 고독 등등 한없이 인간중심적이고 사색적인 키워드들에서 자주 환멸을 느낀다. 그러니까.. 지구상의 모든 다른 생물의 입장에서는 인간이 바로 백인-이성애자-남성이 아니겠는가. 지구의 조커.

 

아무튼 인간을 그렇게 멀리서 보려고 하면 최소한의 질서나 정의 같은 것만 남는 기분이 든다. 사람이 사람을 때리면 안돼. 사람이 사람을 동물취급하면 안돼. 동물을 그렇게 취급하면 안돼.

 

SF 다양한 설정들이 낯설고 어려워서 아직 많이 즐기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계속 주변을 기웃거리게 되는 이유들이다. 2019년의 우리는 첨단의 과학기술을 누린다. 그리고 기술은 우리의 계급을 갈라놓기도 한다. 돌아갈 없는 과거를 이미 많이 지나왔지만, 많은 미래에는 아직 가보지 않았다. SF 읽을 때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진보를 상상해보게 된다.

김초엽 읽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