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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위스키가 두 병 있다. 제임슨과 산토리. 제임슨은 그냥 샷으로 먹을 때 더 맛있고, 산토리는 진저에일과 1:2 비율로 섞은 하이볼로 먹어야 더 맛있다. 캐나다드라이 진저에일을 30캔 박스 채로 배송시켜 쟁여두고 가끔 타먹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가끔’이, 정말 정말 ‘가끔’이다. 두세달동안 한 입도 마시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2년 전 쯤 혼자 바에 가는 걸 즐기던 시기가 있었다. 자취를 시작하면서는 처음으로 위스키와, 얼음을 구 모양으로 얼리는 얼음틀을 사놨다. 그런데 그건 좀, 어느 정도는 허세 때문이기도 했다. 미국 영화와 소설에서 자주 접한 ‘바’라는 공간과 ‘위스키’라는 술에 대한 동경이 주입된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술이 뭐냐고 물으면 물론 위스키라고, 아일래이 계열의 위스키라고 답한다. 위스키는 일단 맛이 있고, 먹었을 때 속도 따뜻해지는게 몸에도 잘 받는 느낌이 있다. 허세 때문에 접하긴 했지만 취향이 남은 셈이다. 지금은 혼자서 바에 잘 가지 않고, 집에 있는 위스키들은 아마 산 지 1년이 다 되어갈 것이다. 술 중에는 위스키를 좋아하지만, 혼자서도 즐겨 먹을만큼 술(위스키)을 좋아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저께 오랜만에 하이볼을 만들어 먹었다. 잊고 있던 구 모양 얼음틀도 거의 1년만에 꺼내서 얼음을 얼렸다. 집에 B를 초대했기 때문이다. B는 나보다 바에도 많이 가고 술에 대한 지식도 많다. 그리고 술을 나보다 잘 마신다. 그 날 나는 기분이 좋아서 덩달아 술을 많이 마셨고, 다음날 결국 술병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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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있는지보다 누구와 있는지가 중요한 사람’
누군가 남긴 트윗 중 일부인데, 그 트윗을 보고 나도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디’에는 바가 들어갈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여행지나 식당이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좋은 곳 멋진 곳 나도 궁금해서 많이 가본다. 그리고 그런 곳은 당연히 나한테만 좋은 곳이 아닐 때가 많아서, 몰린 인파 때문에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고 오기도 한다. 어떤 남배우가 뜬금없이 조명 온도 습도 타령을 했던데, 나한테 더 중요한 건 온도도 습도도 아닌 인구 밀도이다. 그러고 보면 바의 장점 중에 하나도 바로 그 여유롭고 쾌적한 공간 활용과 그로 인해 충족되는 물리적 거리가 아닐까.
당연히 ‘주변에 사람이 많은가’ 보다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더 중요하고, 후자의 좋음이 전자의 나쁨을 가려줄 때도 있다. 혼자서는 주로 사람 없고 깨끗한 가게에 간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날 때는 조금 더 재밌고 힙한 곳에도 자주 간다. 이제는 혼자 가지 않는 바에 오랜만에 B와 함께 갔고 즐거운 대화를 많이 나눠서 좋았다. 여행지나 극장에 혼자서는 잘 가지 않지만,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즐겁게 가서 지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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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계약이 만료되는 7월 전에 이사를 갈 생각이다.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지금의 원룸보다 넓은 곳으로 가서, 거실이나 방 하나를 작업실 겸 사랑방으로 만들고 싶어졌다. 글 모임이든 그냥 노는 모임이든 작업실 겸 사랑방에 초대해서 즐겁게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졌다. 4인용 테이블을 놓고, 위스키와 잔도 더 사놓고, 커피 원두와 드립 기구들도 처음으로 구매해 볼 것이다. 지금보다 조금 더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갈 수도 있겠다. 내가 사는 공간이 내가 같이 있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좋은 공간이 되면 좋겠다. 그럼 나도 그 공간을 더 좋아할 수 있을 것 같다.